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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섹션: 드라마

태왕사신기 16회 - 2007년 11월 7일


태왕사신기 16회
2007년 11월 7일 방영분
방영: MBC
연출: 김종학
극본: 송지나
출연: 배용준, 문소리, 이지아


태왕사신기 16회에서는 실로 오랜만에 후복선 기법을 볼 수 있었다. 내 기억으로도 한국 드라마계에서 80년대 이후로 거의 사용하지 않는 기법이었으며, 이미 폐기처분 되었다고 믿었던 고전적 기법이 한국 드라마 사상 최고의 제작진이 모여 최고의 제작비를 들여 만든 드라마에서 부활했던 것이다.

소위 쌍팔년도 드라마에서나 등장했던 후복선 기법이 16회에서는 두번이나 등장했는데, 첫째는 백호 신물에 대해서 대장장이 마손과 담덕이 나누는 대화 장면이고, 둘째는 담덕과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는 대신관의 대화장면이다. 두 장면의 공통점은 드라마가 진행되는 내내 일언반구 언급도 없다가 나중에 일이 터지고 나니까 '그건 원래 이랬어!'라며 회상으로 처리해버린 것이다.
 
후복선 기법은 제작진들에게 매우 편리하다. 일부러 골아프게 미리 복선을 깔 필요가 전혀 없다. 나중에 일터지면 무조건 회상으로 떼우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작가는 스토리의 완성도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적어진다. 스토리에 뻥뻥 뚫린 구멍들을 나중에 회상으로 대충 메꾸어 놓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후복선 기법이 등장하는 순간 드라마의 내용과 시청자들과의 호흡이 깨져버린다. 시청자들은 등장인물에게 감정이입한 채로 이제까지 드라마가 보여준 내용을 토대로 앞으로의 내용을 예상하며 시청한다. 그것으로 인하여 드라마에 대한 몰입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시청자들이 본 내용이 아닌 전혀 생뚱맞은 내용이 갑자기 끼어드는 후복선 기법은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이해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맞추어 놓았던 균형을 깨뜨려 버린다. 그때까지 본 내용을 토대로 한 시청자들의 이해와 예상이 모두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적극적인 이해와 예상 없이는 시청자들이 등장인물들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없고 함께 호흡할 수도 없다.

소위 한국 드라마계의 거장이라 불리우는 김종학 PD와 송지나 작가가 어째서 제작여건이 열악하던 시대의 유물을 무덤에서 다시 파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주인공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라는 식으로 무책임한 전개를 해나가는 것은 제작진들을 1류에서 3류로 추락시킬지도 모르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이 '식스센스'와 '유주얼 서스펙트'의 반전에서 열광하고 카타르시스를 느꼈는지 제작진이 모를리 없을텐데 말이다. 훌륭한 이야기와 반전이란 미리 차곡차곡 깔아놓은 복선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16회에서도 모든 것은 여전했다. 제작진이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로 말 바꾸기로 일관하는 빈약한 스토리, 시종일관 혀로만 하는 전쟁, 중량감 없는 라이벌 캐릭터인 '호개'를 포장하기 위한 쓸데없는 사족 등등이 반복되어 드라마의 완성도는 여전히 나아지지 못했다. 그나마 '기하'가 갈수록 다크 포스를 작렬하며 어느새 악역으로서의 존재감이 점차 '호개'를 능가하고 있어 유일하게 볼만했다. 아마도 드라마의 종반부에 다다르면 캐스팅 논란에 휩싸였던 '문소리'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잘된 캐스팅이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