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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섹션: 개봉영화

블랙 달리아


블랙 달리아(The Black Dahlia, 2006)
장르: 범죄/스릴러
감독: 브라이언 드 팔마
출연 :
조쉬 하트넷, 스칼렛 요한슨, 아론 에크하트, 힐러리 스웽크, 미아 커쉬너
러닝타임: 120

당신은 나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난 당신을 위해서 그랬어요!
우릴 위해서 했다고요!

'브라이언 드 팔마'의 영화를 볼때마다 '박찬욱'이 생각나곤 한다. 두 사람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두 사람의 영화에서는 두 사람 모두 젊은 시절 정말 징그럽게 영화를 많이 본 시네마 키드였음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 덕분인지 두 사람은 거의 모든 장르의 구조와 특성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며 영화적으로 구현하는데에도 놀라우리만치 탁월하다. 또한 두 감독은 특이하게도 자신들의 재능을 정상적인 것보다는 비틀리고 뒤틀린 스토리를 가진 영화를 만드는데 사용하고 있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2006년작 '블랙 달리아'는 그가 자신이 만드는 영화의 장르를 얼마나 훤히 꿰고 있는지 확연히 보여준다. '블랙 달리아'에는 1940~50년대를 풍미한 필름 느와르라는 장르의 대표적인 기법들이 모두 녹아있었다. 스튜디오촬영을 특성을 이용한 종과 횡의 카메라 워크, 1인칭 시점기법, 빛과 어둠의 적절한 교차, 매력적인 팜므 파탈의 등장 등등. 마치 영화 한편을 통해서 '브라이언 드 팔마'가 필름 느와르라는 장르를 정리하고 재해석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블랙 달리아'의 스토리는 관객들에게 전혀 친절하지 못하다. 스토리가 직선적이지 않기에 영화의 전개를 따라가는 관객들은 엔딩 크레딧을 본 이후에도 비록 범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있지만 도대체 사건이 어떻게 구성된 것인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이것은 복잡한 플롯과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제임스 엘로이'의 원작소설 덕분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제임스 엘로이'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LA 컨피덴셜'을 생각하면, 복잡한 플롯보다는 단순한 플롯 속에서 복잡한 인간의 심리를 보여주길 좋아하는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기에 영화가 이정도나마 관객들에게 친절했다고 본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러브 코메디 영화에나 나왔던 애송이 배우 '조쉬 하트넷'을 기가막히게 포장하여 필름 느와르 시절의 마초적 남성배우처럼 보이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더불어 '조쉬 하트넷'이 현재 여성관객들에게 가장 어필하고 있는 매력인 고뇌하는 눈빛까지 주인공에서 부여함으로서 언듯 '험프리 보가트'을 보는 듯한 착각까지 일으키게 만들었다.

필름 느와르라는 장르의 영원한 히어로이자 고독한 마초맨들의 형님인 '험프리 보가트'. 영원한 고전 '카사블랑카'에서 겉으로는 강한 마초적 매력을 풍기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사랑으로 인해 고뇌하는 '험프리 보가트'를 기억하는 관객들이라면 '조쉬 하트넷'이 '블랙 달리아'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며 아련한 향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조쉬 하트넷'과 더불어 '블랙 달리아'에서는 두 명의 여배우를 주목해야 한다. 팜므 파탈이라는 필름 느와르의 매력적 요소를 기가막히게 살린 두 여배우를 통해 '블랙 달리아'는 단순히 필름 느와르를 흉내낸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필름 느와르가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최고의 미모와 최고의 몸매를 가졌다고 인정받는 '스칼렛 요한슨'은 그 자체가 이미 매력적인 팜므 파탈이라고 볼 수 있다. 흘러넘치는 금발머리, 놰쇄적인 눈빛, 뭔가 숨기는 것이 있는듯한 분위기 등등. 필름 느와르가 가장 선호하는 팜므 파탈형 배우이다.

그런 '스칼렛 요한슨'은 마치 고기가 물을 만난 듯이 '블랙 달리아'에서 자신이 가진 팜므 파탈적인 매력을 십분 발휘하며 연기한다.

'스칼렛 요한슨'이 등장하는 씬을 보게되면 선과 악을 동시에 가진 그녀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뿐더러, 그에 따라서 관객은 영화의 결말에 그녀가 관련되어 있다는 의심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브라이언 드 팔마'가 '블랙 달리아'에서 보여준 장르 비틀기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블랙 달리아'에는 또 한명의 매력적인 팜므 파탈이 등장한다. 그녀는 헐리웃에서 연기를 가장 잘하는 여배우중에 한명인 '힐러리 스웽크'이다. '스칼렛 요한슨'과는 정 반대적인 매력을 가진 '힐러리 스웽크'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최근 '태왕사신기'에서 '문소리'의 캐스팅 논란이 떠오른다.


비록 외모적으로는 '스칼렛 요한슨'에 비하여 떨어지지만, 영화속에서 빛을 발하는 '힐러리 스웽크'의 연기는 그녀를 완벽한 팜므 파탈로 보여지도록 만들었다.

솔직히 '블랙 달리아'의 영화적인 완성도를 높여준 것은 그 자체가 팜므 파탈인 '스칼렛 요한슨'이라기 보다는 영화내에서 관객들마저도 속인 '힐러리 스웽크'의 팜므 파탈 연기이다.  만약 그 배역을 맡은 여배우가 '스칼렛 요한슨'에 버금가는 미모를 가졌지만 '힐러리 스웽크'의 연기력에는 못 미쳤다면 영화는 관객들이 쉽게 결말을 예측할 수 있을만큼 일찌감치 김이 빠져버렸을 것이다.

따라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선택은 관객들의 눈만을 즐겁게 해주는 외모만 예쁜 배우가 아니라 관객들의 오감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연기력을 가진 배우일 수밖에 없다.
 
친절하지 못한 복잡한 플롯으로 인해서 '블랙 달리아'를 본 관객들이 영화에 불만을 표시할 수도 있다. 마치 EBS에서 해주는 옛날 흑백영화를 보는 것처럼 배우들이 똥폼만 실컷 잡다가 끝났다고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필름 느와르라는 장르를 현시점에서 구현하였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봐야만 한다. 2차대전 직후의 불안한 사회상을 부패한 권력, 악취나는 돈, 비도덕적인 섹스, 그로 인한 살인 으로 풀어낸 필름 느와르라는 장르가 모든 것이 풍족한 현 시대의 관객들에게 쉽게 이해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이다. 일례로 동성애를 벌이는 장면이 담긴 필름을 보며 인상을 찡그리는 영화속 배우들을 보며 현 시대의 관객들은 좀처럼 이해를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미 동성애를 받아들이는 관점이 1950년대와 크게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기 위해서는 관객들 스스로가 1950년대의 감성에 젖어야할 필요가 있다. 그 시대의 관점으로 영화를 보고 그 시대의 가치관과 사회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영화를 보면 '블랙 달리아'가 얼마나 잘 만들어진 영화인지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블랙 달리아'가 단순히 필름 느와르라는 장르를 현대에서 답습한 영화는 아니다. 비틀기와 뒤집기가 장점인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영화답게 영화 곳곳에서 장르의 공식을 기가막히게 비틀거나 뒤집어 버렸다. 그 대표적인 예가 두 명의 팜므 파탈의 뒤틀린 구도이다.

결론적으로 '블랙 달리아'는 대표적 시네마 키드인 '브라이언 드 팔마'의 필름 느와라는 장르의 현대적 해석이라 볼 수 있다. 그 시대의 영화들에 대한 오마쥬이면서도 감독은 자신의 발칙한 세계관을 영화에 녹여내 필름 느와르라는 장르에 새로움을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