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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크린 감자의 영화보기'에 해당되는 글 28건

  1. 2008/08/19 헬보이 2: 골든 아미 - 반지의 제왕을 멋지게 조롱하다! by 웅크린 감자
  2. 2008/08/19 헬보이 2: 골든 아미 (2008) by 웅크린 감자
  3. 2008/08/18 X-파일: 나는 믿고 싶다 - 멀더는 전설로 남아야 했다. by 웅크린 감자
  4. 2008/08/18 x-파일: 나는 믿고 싶다(2008) by 웅크린 감자
  5. 2008/08/07 다크 나이트(2008)-히스 레저의 영화가 아니다! by 웅크린 감자 (9)
  6. 2008/08/05 월-E(2008) - 로봇들의 에덴동산 이야기. by 웅크린 감자 (2)
  7. 2008/07/08 플래닛 테러 - 로버트 로드리게즈와 김지운의 공톰점 by 웅크린 감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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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보이 2: 골든 아미
(Hellboy 2: The Golden Army, 2008)
장르: SF/액션/판타지
감독: 길예르모 델 토로
출연: 론 펄먼, 셀마 블레어, 더그 존스, 루크 고스, 애너 월턴 등
러닝타임: 120분

우리가 죽으면...
그만큼 세상은 헐벗는 거야.



'반지의 제왕'이 마음에 들지 않았거나 뭔지 모르게 불편함을 느꼈다면 '헬보이 2: 골든 아미'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피터 잭슨 감독과 외모마저 흡사한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헐리우드산 블록버스터 액션영화인 '헬보이'를 가지고 아주 멋지고 통쾌하게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엿먹이며 조롱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분명 멋진 작품이며 명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만큼 작품성이 뛰어나다. 그러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태생적인 한계이자 오류는 철저하게 인간의 관점에서 쓰여진 판타지 역사라는 점이다. 즉,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오직 인간만이 정의이고 사우론과 오크들은 극단적인 악으로 묘사된 채,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인간을 도와 사우론의 세력을 물리쳐야 한다는 극도로 단순한 이분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 어째서 인간은 정의이고 사우론은 악인지 아무런 설명이 존재치 않는다. 그저 인간과 맞서기에 악이라고 칭하고 있을 뿐이다. 더불어 인간을 도와 사우론과 대적하는 인간 이외의 종족들은 중간계를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인간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들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았다. 사우론을 물린친 중간계를 지배하는 것은 바로 다름아닌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철저하게 인간의 관점에서 인간을 중심에 놓고 본 세계관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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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반하여 '헬보이 2: 골든 아미'는 인간의 관점으로 이루어진 인간중심의 세계관을 거부한다. 오로지 인간만이 정의라며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내세운 사상을 철저하게 비웃고 있다. '헬보이 2: 골든 아미'에서 인간은 사우론의 오크들보다도 못한 존재로 묘사되었다. 만족을 모르는 탐욕, 이기심, 배은망덕으로 똘똘뭉쳐 바퀴벌레처럼 지구를 좀먹고 세상을 더럽히는 종족이 바로 인간인 것이다. 이렇듯 '헬보이 2: 골든 아미'에서는 먼저 전쟁을 시작하고 세계를 지배하려는 탐욕을 부린 종족은 인간이며, 나머지 종족들은 그런 인간의 탐욕에 맞서서 끝까지 정의롭게 싸웠지만 명예를 모르는 탐욕스런 돼지들인 인간은 세상을 더럽힌 채 나머지 종족들을 점차 세상에서 밀어내려 한다. 그렇기에 엘프족의 왕자 누아르는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봉인해 두었던 골든 아미를 깨워 인간을 말살하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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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보이 2: 골든 아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엘프에 대한 고정관념을 멋지게 엿먹여 버렸다는 사실이다. '반지의 제왕'에 등장했던 엘프는 모두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완벽한 미모, 완벽한 몸매, 완벽한 성격, 그리고 완벽한 정의감까지 결국 엘프란 불완전한 인간의 완성판이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관점에서 본 엘프의 모습임을 부인할 수 었다. 원작에 엘프란 가장 완벽한 종족이자 가장 아름다운 종족이라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는 그 완벽함과 아름다움을 지극이 인간적인 관점에서 묘사했다. 인간이 추구하는 아름다움과 완벽함이 다른 종족들이 추구하는 완벽함과 아름다움에 합치되지 않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반지의 제왕'에서 묘사된 엘프는 오로지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완벽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묘사되었던 것이다.

그에 반하여 '헬보이 2: 골든 아미'에서 묘사된 엘프의 모습은 언뜻보면 괴기하고 추해보이기까지 한다. 일본의 가부끼 화장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 보아지는 엘프들의 모습은 기존의 엘프들에 익숙해져 있던 관객들에게는 적지않게 불편함을 던져준다. '헬보이 2'에 등장하는 엘프들은 인간보다 아름답지도, 인간이상으로 정의롭지도, 인간보다 완벽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바로 이 부분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왜 엘프가 인간보다 아름다워야만 하는가? 엘프는 엘프의 기준에서 아름다우면 된다. 왜 엘프가 인간의 기준에서 정의로워야 하는가? 인간의 정의는 인간사회를 위한 것이듯 엘프의 정의는 엘프사회를 위한 것이어야만 한다. 왜 엘프는 인간보다 완벽해야만 하는가? 엘프는 엘프로서의 완벽함을 추구하면 그뿐이다. '반지의 제왕'에서 오로지 인간을 돕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만 같았던 엘프들의 모습에 침을 뱉듯 '헬보이 2: 골든 아미'의 엘프들은 그들의 기준과 정의를 내세운 모습으로 인간에게 반기를 든다. 엘프의 입장에서보면 인간이 사우론 세력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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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피터 잭슨과 쌍둥이 같은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등장이 반가운 이유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거울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주지 않는다. 좌우가 반대되어 비추어주는 것이다. 비록 쌍둥이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피터 잭슨과 길예르모 델 토로는 서로 정 반대되는 세계관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 피터 잭슨이 인간을 중심에 놓은 채 인간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고 그에 따른 상상력을 영상으로 표현한다면, 길예르모 델 토로는 정반대의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보고 그에 따른 상상력을 영상화하는데 특출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문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채 균형을 이루어야만 한다. 따라서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킹콩'으로 인하여 판타지 영화의 거장으로 추앙받고 있는 피터 잭슨의 세계관이 영화계 전체의 주류가 되지 않도록 대항마로서 정반대의 위치에서 피터 잭슨에게 엿을 먹이고 조롱하며 균형을 잡아줄 길예르모 델 토로의 등장은 여러모로 반가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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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웅크린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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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보이 2: 골든 아미
(
Hellboy 2: The Golden Army, 2008)
장르: SF/판타지/액션

20자평: 길예르모 델 토로, 이 친구 물건이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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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웅크린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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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파일: 나는 믿고 싶다.
(The X-Files: I Want To Believe, 2008)
장르: SF/드라마
감독: 크리스 카터
출연: 데이빗 듀코브니, 질리안 앤더슨, 다코타 휘트니, 조셉 크리스먼 등
러닝타임: 104분

스컬리, 이게 나에요.
당신을 만나기 이전에도 항상 이랬고 이일이 내가 아는 전부예요.

글로 써요. 책을 만들어요.


아무리 잘 만들어진 '베스트 극장'이라고 해도 영화와 동급이 될 수는 없다. 이는 TV매체가 갖는 한계와 관객들이 극장에서 기대하는 기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크게 히트하여 매니아들을 양산한 TV 시리즈들이 영화화 되는 것을 자주볼 수 있다. 얼마전 한국에서 개봉했던 'Hero'와 '섹스 앤 더 시티'가 그 대표적이 예이다. 문제는 이런식으로 제작되는 영화들은 기존의 TV시리즈 매니아들의 기대치와 TV시리즈를 모르는 일반관객들을 동시에 만족시켜야만 하는 까다로운 상황에 놓인다는 사실이다. 즉, TV시리즈만의 아기자기한 구성을 유지하면서도 거대한 스크린에 어울리도록 스토리와 상황을 짜맞추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상당히 까다로운 작업이다. 시청자들이 TV시리즈를 보는 시청패턴과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관람경향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청패턴에 맞혀져 있는 TV시리즈의 구성을 관람경향에 맞도록 재구성하는 일은 자칫 잘못하면 양쪽 모두의 장점을 잃게될 위험이 존재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TV시리즈의 영화화는 '베스트 극장' 형식이 사용된다. TV시리즈와 이어지는 스토리와 구성에 TV시리즈의 팬들이 원하는 요소를 집어넣은 후 규모와 스케일을 키우는 것이다. '베스트 극장'처럼 TV시리즈보다 많은 시간동안 기승전결로 이루어진 스토리를 TV시리즈보다 규모와 스케일을 키워 TV시리즈의 매니아들과 영화관객들을 모두 만족시키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리 작품성과 흥행성이 높은 '베스트 극장'이라고 해도 막상 영화관에서 상영하면 그것을 보러올 관객들이 별로 없다는 것에 있다. '베스트 극장'은 일종에 TV영화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TV에 맞추어진 TV용 영화이기 때문이다. 대형 스크린에서 상영되어 영화관을 찾아온 관객들을 만족시킬만한 문법과 기법으로 제작되지 않은 것이다.

오랜만에 TV시리즈 매니아들에게로 돌아온 전설의 'X-파일'의 세번째 영화인 '나는 믿고 싶다'는 '베스트극장'의 함정에 빠진 전형적인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비록 매니아들에게는 달콤한 꿀같은 컴백일지 몰라도 TV시리즈를 모르는 일반 관객들에게는 '심슨 더 무비'의 첫 대사처럼 TV에서 공짜로 볼 수 있는 것을 일부러 돈내고 영화관에서 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두번재 영화 '미래와의 전쟁'처럼 규모라도 비약적으로 키우고 TV시리즈의 떡밥이었던 외계인의 실체라도 보여주었다면, 관객들은 굳이 TV시리즈를 몰라도 '나는 믿고 싶다'를 재미있게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믿고 싶다'는 TV시리즈의 에피소드를 영화화 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규모도, 미스터리도, 스케일도 모두 TV시리즈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TV용 '베스트 극장'을 보고 있다는 기분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실로 오랜만에 TV시리즈 매니아들에게로 돌아온 'X-파일'의 영웅 멀더요원은 예전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스마트하고, 유머있고, 섹시하기까지한 FBI 특수요원 멀더가 아니라 나이들고, 살찌고, 고집스런 아저씨였던 것이다. 물론 데이빗 듀코브니는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멀더요원의 연기를 훌륭히 잘 해냈지만 팬들의 기억속에 존재하는 멀더요원의 환상을 만족시켜 줄 수는 없었다. 매니아들에게 있어서 멀더요원은 시청자들을 대신하여 거대한 권력이 감추고 있는 진실을 파헤치는 십자군이었다. 따라서 멀더요원은 서태지가 절대로 늙기를 바라지 않듯이 진실을 추구하는 영웅으로서의 아우라를 뿜어내며 매니아들의 뇌리에 영원토록 남아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나는 믿고 싶다'로 돌아온 멀더요원은 비록 말과 행동은 예전의 그 멀더요원이었지만 모습과 아우라가 예전의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서태지처럼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변하지 않는 모습을 갖게 되었다는 말을 들을 수 없다면 멀더요원은 그냥 전설로서 남아야만 했다. 전설은 시간이 갈수록 덧붙여지고 미화되어 더 찬란해져야만 하지 나이먹고 포스잃어 초라해져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비록 만듦새는 나쁘지 않았지만 'X-파일: 나는 믿고 싶다'는 여러모로 TV시리즈 매니아들을 실망시켰으며 일반 관객들을 만족시키지 못한 어중간한 영화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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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웅크린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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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파일: 나는 믿고 싶다
(The X-Files: I Want To Believe, 2008)
장르: SF/드라마

20자평: 아저씨가 된 멀더는 더 이상 섹시하지도 스마트하지도 않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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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웅크린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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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 2008)
장르: 액션/ 느와르
러닝타임: 152분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크리스찬 베일, 마이클 케인, 히스 레져, 게리 올드만, 아론 에크하트, 메기 질랜홀 등


혼란이라는 게 뭔지 좀 보여줄까.
확립된 질서를 무너뜨리면 모든 게 혼란스러워지지
나는 혼돈을 대표하지.
아, 그리고 혼돈이라는 게 말이야.
두려움과 같아.


히스 레저의 불행한 죽음이 없었다면 과연 '다크 나이트'가 전세계적으로 커다란 이슈를 불러모으며 엄청난 흥행행진을 거침없이 해나갈 수 있었을까? 크리스토퍼 놀란이 헐리우드의 제작자들을 보기좋게 속여넘기며 만든 '다크 나이트'는 알려지고 그에 따라 사람들이 기대하듯 헐리우드산 전형적인 블록버스터가 아니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올라타기만 하면 엄청난 속도로 현실감을 낮추며 스릴과 흥분을 극한까지 전해준 후 허무하리만큼 허탈한 결론을 통해서 현실로 돌아와버리는 롤러코스터가 아니었던 것이다. '다크 나이트'는 롤러코스터라기 보다는 늪이었다.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관객들의 발목을 잡은 채 선과 악이 혼재되어 존재하는 혼돈의 늪으로 천천히 조금씩 끌어당긴다. 그리고 영화가 클라이막스에 다다란 순간 관객들은 비로소 깨닫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몸이 혼돈의 늪 속으로 턱밑까지 빠져들어 가버린 상태임을. 바로 그순간 크리스토퍼 놀란은 히스 레저가 분한 조커를 통해서 관객에게 가혹한 선택을 강요한다. 그런 비참한 상태로라도 계속 살아갈텐가? 아니면, 아예 늪속으로 완전히 빠져들어 편안해질 텐가?
 
'다크 나이트'를 주제를 상징하고 있는 것은 하비 덴트(에론 에크하트)의 동전이라 볼 수 있다. 행운과 불행, 선과 악을 상징하는 하비 덴트의 동전처럼 배트맨과 조커는 동전의 양면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동전을 던지며 자신의 운명을 거는 하비 덴트는 투 페이스라는 별칭처럼 동전의 양면을 모두 가진 인간을 의미한다. 하지만 관객들은 얼마 안가서 깨닫게 된다. 하비 덴트의 동전의 앞뒤가 같은 것처럼 배트맨과 조커는 서로 반대되는 존재들이 아니라 등이 붙은 샴쌍둥이 같은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조커의 말처럼 인간의 삶에 절대악도 절대선도 존재할 수 없다. 선과 악이 혼재되어 적당한 균형을 이룬 채 혼돈되어 있는 상태속에서 인간은 하비 덴트처럼 선과 악을 상징하는 동전을 던져 자신의 가치관과 행동을 결정한다. 정작 선택을 하는 것은 인간 자신이면서도 모든 책임을 동전에게 떠넘겨 버린 채. 더불어 선과 악, 행운과 불행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악이 존재치 않으면 선도 존재할 수 없으며, 불행이 정의되지 않으면 행운마저도 무엇인지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트맨은 조커를 여러차례 죽일 수 있으면서도 결국 죽이지 못한다. 그것은 배트맨의 정의감 때문이 아니라 배트맨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정의해줄 샴쌍둥이 조커가 존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배트맨이 없다면 자신은 그저 단순한 양아치에 불과할 뿐이라는 조커의 말은 그렇기에 의미심장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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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나이트'의 진정한 주인공은 불행한 죽음을 맞은 그 순간부터 영웅이 되어 조커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히스 레저도, 50년대의 음울하고 어두운 필름 느와르의 주인공으로 재탄생한 배트맨의 크리스챤 베일도 아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숨겨둔 진짜 주인공은 등이 붙은 샴쌍둥이 배트맨과 조커를 끊임없이 던져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하비 덴트이다. 그리고 하비 덴트는 '다크 나이트'를 관람하고 있는 관객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오로지 선만이 나오는 동전을 가지고 있었을 때 하비 덴트는 얼마든지 용감하며 정의로울 수 있었다. 그러나 얼굴과 함께 동전의 반이 불타버리자 하비 덴트는 선과 악 사이에서 흔들리며 자신의 정체성을 잃게 된다. 그만큼 인간은 나약하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유혹에 시달리며 선과 악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 선택자체를 두려워하고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갖지 못하며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든다. 그 모든 것을 하비 덴트의 동전이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하비 덴트와 마찬가지로 관객들은 배트맨과 조커 사이에 존재한다. 살아가면서 하비 덴트가 동전을 던지듯 선택을 하여 때론 배트맨을 선택하고 때론 조커를 선택한다. 그리고는 하비 덴트처럼 애써 이렇게 자위한다. '이건 내 선택이 아니라 동전의 선택이었어!'라고...

'다크 나이트'는 블록버스터라고 칭할 수 없다. 블록버스터의 속도, 흐름, 공식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블록버스터의 외피는 크리스토퍼 놀란이 보여주려한 필름 느와르 속에서 마주하는 인간의 본질이 관객들에게 명확히 전달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관객들은 짜릿한 속도감을 기대하며 롤러코스터를 탔는데, 정작 '다크 나이트'는 아름다운 운하사이를 유유히 흘러가는 곤돌라처럼 움직였기 때문이다. '다크 나이트'가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관객들의 기대치가 달랐다는 말이다. 김치찌개를 먹으러 간 관객들에게 세상에서 아무리 맛있는 된장찌개를 내놓아봤자 기대치가 충족될 수 없기 마련이다. '다크 나이트'를 보며 차라리 크리스토퍼 놀란이 쓸데없는 블록버스터 외피를 벗어버리고 정직하게 필름 느와르로서 승부했다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전세계적인 거대 흥행은 바랄 수 없겠지만 '다크 나이트'가 단지 히스 레저의 신화로서 존재하며 관객들이 단순히 조커의 영화로 받아들이는 오류는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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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웅크린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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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E(2008)
장르: SF/모험
제작: 픽사
감독: 앤드류 스탠튼
러닝타임: 104분
이건 농사라는 건데
니들은 모든 종류의 식물을 다 재배하게 될거야.

쓰레기로 가득찬 지구를 에덴동산이라 여기고 홀로 묵묵히 청소를 하고 있던 로봇 월-E를 아담이라 칭한다면 먼 우주에서 날아온 탐사로봇 이브의 등장은 당연한 귀결이라 볼 수 있다.
 소박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묵묵히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행하던 쓰레기 청소로봇 월-E의 일상을 갑자기 나타난 탐사로봇 이브는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아무런 의심없이 다람쥐 챗바퀴돌듯 매일 일정하게 반복되던 월-E의 일상은 이브의 등장으로 인하여 완전히 어긋나버린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에덴동산의 아담이 그러했든이 월-E가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은 존재는 다름아닌 이브이다. 비록 성경에는 사악하고 간사스럽게 묘사되어 있지만 이브가 아니었다면 아담은 결코 선악과를 따먹기 위해서 용기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 용기는 아마도 아담의 생애 처음으로 내본 용기일 것이며 주어지고 정해져 있던 수동적 삶을 거부하고 스스로 개척하고 만들어가는 능동적 삶을 향해 내딛은 첫발이나 다름없다.

아담이 생애 처음으로 낸 용기로 인하여 선악과를 따먹은 덕분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지만, 과연 아담은 불행하기만 했을까? 에덴동산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신이 마련해 놓은 환경을 수동적으로 취하며 사는 인생이 아담에게 정녕 행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완비되어 있으며 편안한 액시멈에서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은 그들의 삶이 행복하기만 할까? 행복과 불행은 상대적인 개념이며 불행 자체를 모른다면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도 알 수 없다. 액시멈에서 로봇들의 시중을 받으며 의자에 누워 살아가는 인간들은 그들이 행복한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그저 로봇들이 이끄는데로 태어나고 자라서 죽어갈 뿐이었다. 그런 그들의 인생에 끼어들어 그들 스스로의 두발로 인생을 살아가도록 만든 월-E와 이브는 과연 신을 거역한 원죄를 가진 존재들일까?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인류의 역사는 만들어지지 않았듯이, 어찌보면 월-E와 이브는 새로운 인류의 역사를 열게 만들어준 혁명가들인 것이다.

이렇듯 천지창조와 에덴동산의 스토리를 로봇에 대입하여 풀어낸 '월-E'는 겉으로 보이는 따뜻함 속에 치명적인 질문을 품고 있다. 월-E와 이브를 만든 것은 인간이다. 그렇다면 인간을 만든 것은 누구인가? 이를 뒤집게 되면 액시멈의 수동적인 인간들을 능동적인 인간으로 만들어준 것이 피조물들인 월-E와 이브이듯이, 어쩌면 창조주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월-E와 이브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정면으로 뒤집고 있다. 피조물의 개입에 의해서 액시멈의 인간들이 비로소 인간다워졌던 것이다. 즉, 월-E와 이브로 인하여 인간이 인간으로서 재탄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야지만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역사가 시작된다. 이는 뒤집어 생각해보면 인간을 쫓아내주는 존재를 인간이 가져야만 인간은 인간으로서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된다. 결국 월-E와 이브가 그랬던 것처럼 아담과 이브도 능동적인 개입에 의해서 신을 창조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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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웅크린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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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닛 테러(Planet Terror, 2007)
장르: 액션/좀비
감독: 로버트 로드리게즈
출연: 로즈 맥고완, 프레디 로드리게즈, 말리 쉘튼 등
러닝타임: 106분

맥시코 해안가로 가서
바다에 등을 지고 스스로를 보호하며 살아야 해.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헐리우드에서도 손꼽히는 스타일리스트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만의 특유한 스타일, B급유머,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들을 영화를 통해서 확인할 때마다 관객뿐만 아니라 평단까지도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무한한 잠재력에 기대를 걸곤 했었다. 그러나 1992년 저예산 영화의 신화를 쌓아올렸던 충격적인 데뷔작 '엘 마리아치' 이후로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잠재력은 16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발휘되지 않고있다.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최신작을 볼때면 늘 이번 영화보다는 다음 영화를 기대하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는 와중에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스타일은 어느덧 정체되어 버렸으며 오직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만으로 승부를 거는 일이 잦아졌다. 이쯤되면 로버트 로드리게즈에게서 발휘될만한 잠재력이라는 것이 애초부터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보이고 있는 로버트 로드리게스의 영화들이 그가 만들 수 있는 최대치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이런 의심은 이번에 170억짜리 블럭 버스터 '놈놈놈'을 들고나오는 김지운 감독에게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1998년 재기발랄했던 저예산 영화 '조용한 가족'으로 데뷔한 이후로 평단과 관객들은 김지운만의 장르 비틀기가 적용된 영화들을 보면 즐거우면서도 한편으로 아쉬움을 느끼곤 했다. 좀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좀더 멋들어진 작품이 만들어질 것만 같은데, 아쉽게도 김지운 감독의 영화들은 늘 문턱에서 주저앉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들은 늘 김지운 감독의 차기작에 대한 기대치를 부풀려 놓았다. 한국에서는 보기드문 스타일리스트인 김지운 감독의 능력과 재기발랄함, 그리고 아이디어에 기대를 걸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놈놈놈'을 봐서도 알 수 있듯이 김지운의 신작들은 기대를 한껏 모은 것에 비하여 막상 뚜껑이 열리면 어김없이 아쉬움을 던져준다. 늘 한발작이 모자라 문턱에서 주저앉는 일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이제 슬슬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로버트 로드리게스처럼 김지운도 지금 보여주는 것이 그의 가진 한계는 아닐지?

'플래닛 테러'은 대놓고 B급으로 만든 영화이다. 비가 내리는 화면, 의미없이 내뱉어지는 겉멋들린 대사들, 인과관계를 무시한 전개, 어처구니 없는 반전까지 TV가 없던 시절에 미국인들의 유일한 낙이었던 헐리우드 B급 영화의 미덕을 모조리 재현하고 있다. 따라서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스토리가 아니라 스타일이다. 마초 아니면 겁장이로 표현되는 남성 캐릭터들, 아무 의미없이 화면을 채우는 쭉쭉빵빵한 여성 캐릭터들의 섹시한 자테, 어처구니 없는 애국심 코드, 극명하게 대비되는 선과 악 등등. 쿠엔틴 타란티노처럼 헐리우드의 대표적인 시네마 키드인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자신의 감수성이 형성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B급 영화들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어떤 식으로 받아들였는지 '플래닛 테러'의 스타일안에 모두 들어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B급 영화의 미덕들을 살짜쿵 비트는 것도 잊지 않았다. 헐벗은 자태의 섹시한 여주인공의 한쪽 다리를 잘라내고 기관총을 달아놓고, 겉멋들린 마초임에도 불구하고 왜소한 외모로 인하여 전혀 위압감을 주지 못하는 남자 주인공을 내세웠으며, 21세기에만 통용되는 유머를 곳곳에 심어놓았던 것이다.

하지만 '플래닛 테러'의 한계는 거기까지라고 볼 수 있다. 이번에도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영화답게 더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B급 영화의 미덕을 열심히 재현하고 살짜쿵 비트는 것까지는 좋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서 어떤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즉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영화는 과정만 존재할뿐 결과가 부재하다. 덕분에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영화들을 보면 시원하게 볼일을 본 후 뒷처리를 하지않은 듯한 아쉬움과 허전함이 느껴지곤 한다. 1992년 충격적인 데뷔작 '엘 마리아치' 이후로 16년이 지나 2007년작 '플래닛 테러'까지 이와같은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영화들 특유의 아쉬움과 허전함은 조금도 나아지지 못했다. 이번에 '놈놈놈'을 들고나오는 김지운 감독도 혹여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된다. '놈놈놈'에서 마저도 '조용한 가족'에서 느꼈던 아쉬움과 허전함이 또다시 느껴진다면 일찌감치 김지운 감독의 한계에 대해서 인정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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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웅크린 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