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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크린 감자의 애니메이션'에 해당되는 글 22건

  1. 2008/08/16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 2000) by 웅크린 감자 (1)
  2. 2008/08/13 이노센스(Ghost In The Shell 2 : Innocence, 2004) by 웅크린 감자 (1)
  3. 2008/08/11 작안의 샤나(灼眼のシャナ) 3화 - 인간에게 기억이란? by 웅크린 감자 (1)
  4. 2008/08/10 작안의 샤나(灼眼のシャナ) 2화 - 나는 존재하는가? by 웅크린 감자
  5. 2008/08/08 슬레이어즈 Revolution 6화-이 애니가 사랑받는 이유? by 웅크린 감자 (2)
  6. 2008/08/01 슬레이어즈 Revolution 5화-주인공을 압도하는 악역 by 웅크린 감자 (2)
  7. 2008/07/28 공의경계[空の境界: 제3장 통각잔류(痛覚残留)] by 웅크린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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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 2000)
장르: 드라마
감독: 알렉산드로 페트로브
러닝타임: 20분

괜찮아요, 제가 운을 가져오면 되죠.
어서 나으세요.
할아버지한테 배울 게 많아요.



생성, 성장, 쇠퇴, 사멸...
시간에 얽메여 있는 인간의 삶이란
어쩌면 덧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어떤 화려한 빛도
시간이 흐르면 빛이 바래져버리는
가혹한 운명을 피할 수 없기에

그 어떤 찬란한 영광도
시간이 지나면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슬픈 현실을 인정해야만 하기에

인간의 삶이란
어쩌면 한여름밤의 반딧불이처럼
비록 아름답지만
스스로를 밝히는 것이 고작인
작고 연약한 불빛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유리판 위에 일일이 그림을 그려넣어 만든
이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은
아름다운만큼 슬프다.

꿈을 가지고 성장하여,
사자처럼 용맹함을 떨쳤지만,
무심히 흐르는 시간속에서 점점 쇠퇴하여,
이제는 84일 동안 고기를 잡지 못한
늙고 무능한 어부가 되어버린
한 노인의 삶이...

죽기전 마지막으로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반딧불이처럼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인의 삶과 자아를 상징하는 청새치는
영광을 맞이하기 직전
시간이라는 상어떼로 인하여
앙상한 뼈만 남겨진다.
 
큰 흐름의 시간 속에 놓인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덧없고 짧은 순간에 불과할 뿐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노인은 좌절할지언정 결코 실패한 것은 아니다.
노인의 삶과 영광은
비록 시간의 흐름속에서 빛을 바랬지만
노인의 용기와 정신은
소년을 통해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렇게 살아간다.
고고히 흐르는 시간의 큰 흐름속에서
작은 존재일 수밖에 없는 인간은
영광이 아닌 정신을
세대에서 세대로 계승시키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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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웅크린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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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센스(Ghost In The Shell 2 : Innocence, 2004)
장르: SF/액션
감독: 오시이 마모루
러닝타임: 99분

새의 피에는 슬퍼하지만, 물고기의 피에는 슬퍼하지 않는다.
목소리 있는 자는 행복하여라!


인간의 원죄는...
인간으로서는 결코 해답을 찾을 수 없지만,
그 해답을 알기전에는 결코 존재를 확신할 수 없는
근원적이고 공포스런 질문에 닿아있다.

인형을 만든 존재는
자신의 모습을 본따 만든 인간이다.
그렇다면,
인간을 만든 존재는 누구인가?

인간이 한낱 무기질 덩어리로 이루어진
어떤 존재의 모습을 본따 만들어진
단순히 인형같은 존재가 아니기 위해서
인간은 자신을 창조한 창조주를
포장하고 신성시할 수밖에 없다.


즉...
인간에게 신이란
무한한 경외와 무조건적인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을 한낱 무기질 덩어리 인형이 아니게 만들어주는
필요조건일 뿐이다.





따라서...
어쩌면 신에 대한 인간의 숭배는
신을 통하여 인간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얻고싶어하는
인간의 이기적인 표현방법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살아있는 생물중 유일하게
영혼에 대하여 집착하는 행위자체가
그만큼,
자신의 존재에 대한 확신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비록 몸은 무기질 덩어리 인형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무기질 덩어리안에
인간을 신과 닿게 만들어주는
영혼이라는 신성함이 자리잡고 있노라고
인간은 스스로를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딱딱한 기계덩어리인 컴퓨터를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은
 단순히 '0'과 '1'로 이루어진 소프트웨어이듯이
무기질 덩어리 인형인 인간의 육체를 움직이고 있는 것도
영혼이라는 이름을 가진
단순한 체계로 만들어진 소프트웨어일 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인간에게 더 이상 신은 필요하지 않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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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웅크린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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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안의 샤나(灼眼のシャナ) 3화
장르: 액션/판타지
감독: 와타나베 타카시
각본: 코바야시 야스코
러닝타임: 25분




인간은 존재하기 위하여 기억되는가? 아니면, 기억되기 위하여 존재하는가? '에반게리온'을 만든 신지의 어머니는 인류가 멸망한 이후에도 인류가 존재했다는 기억을 남기고 싶어서 불멸의 존재인 에바를 만들었다. 그만큼 인간은 기억에 매달린다. 100년도 채 못살 유한한 존재이면서 감히 1000년을 꿈꾸며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업적으로서 기억되려하는 것이다. 왜냐고? 슬프게도 나란 존재를 증명해줄 수 있는 것이 타인의 기억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태어나 자아라는 것을 갖춘 채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타인이란 거울을 비추어 자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타인이 날 어떻게 보는지, 타인이 날 어떻게 판단하는지, 타인이 날 어떻게 기억하는지에 따라서 나란 존재가 결정되는 것이다. 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외모, 목소리, 성격 등등 따져보면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타인이 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결정되어 왔음을 깨달을 수 있다.

이렇듯 나란 존재를 규정하는 존재가 타인임으로, 인간은 타인의 기억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타인의 기억속에서 잊혀진 순간 나란 존재자체도 잊혀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집단 따돌림이 한 개인에게 크나큰 심리적 데미지를 입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순간 나란 존재를 규정해주는 존재들이 존재치 않게 되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인간을 끈떨어진 연처럼 세상속에서 부유하게 만들어버린다. '작안의 샤나'에서 사카이가 원하는 것은 토치로서의 삶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친구들로부터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란다. 인간에게 있어서 삶이란 기억의 축적이라고 보았을때,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존재의 규정이며 이는 타인의 기억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간단한 예로 세상 모두가 어느 한사람에게 등을 돌린 채 그의 존재자체를 부정해버린다면 비록 생명이 붙어 있고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해도 그는 과연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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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웅크린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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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안의 샤나(灼眼のシャナ) 2화
장르: 액션/판타지
감독: 와타나베 타카시
각본: 코바야시 야스코
러닝타임: 25분




나는 존재하는가? 실존에 관한 문제는 인간의 트라우마라고 볼 수 있다.  영화 '매트릭스'가 복잡한 세계관과 온통 꼬여있는 스토리 구조를 가지고도 전 세계적으로 흥생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전 세계인의 공통적인 트라우마를 효과적으로 자극한 덕분이었다. 인간은 스스로를 완전히 믿을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다.  자신의 존재자체를 100%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존재할까?', '이 모든 것이 꿈은 아닐까?', '나는 단지 가상현실속에 놓여져 있는 것은 아닐까?' 이와같은 인간의 실존에 관한 두려움은 '매트릭스' 세계에서 교묘하게 구현되었고 전 세계인의 공포심을 짜릿하게 자극하였던 것이다. 

그로 인하여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타인을 통해서 증명받으려고 한다. 타인이 내 이름을 불러주고, 나를 인지해주고, 나를 사랑해주었을 때, 인간은 비로소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안심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카이는 토치로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히라이를 기억하기 위해서 애를 쓴다. 이는 단순히 히라이를 동정하는 마음 때문만은 아니다. 히라이의 존재가 잊혀지면 히라이를 통해서 자신의 실존을 증명받았던 사카이마저도 잊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배신자는 차라리 매트릭스 시스템에서 깨어나기 이전이 더 행복했노라고 말했다. 어찌보면 사카이는 그 배신자의 마음과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존재하는 것은 모든 사라진다는 시스템 자체를 인지하기 보다는 시스템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받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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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웅크린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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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레이어즈 Revolution 6화
장르: 판타지/모험
감독: 와타나베 타카시
각본: 타카야마 하루오
러닝타임: 24분




사실상 '슬레이어즈' 시리즈는 약점이 많은 애니메이션이다. 고 퀄리티의 작화, 꽉 짜여진 스토리, 뛰어난 세계관, 촘촘히 그물망처럼 짜여져 있는 복선 등등이 거의 존재치 않는 애니메이션인 것이다. 사실상 만듦새만으로 평가하자면 '슬레이어즈' 시리즈보다 더 뛰어난 애니메이션들이 얼마든지 존재한다. 하지만 아무리 월 메이드로 잘 만들어진 작품도 '슬레이어즈' 시리즈만큼 사랑받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슬레이어즈' 시리즈는 애니메이션의 초심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창궐하고 있는 애니메이션들은 너무 무겁고, 복잡하고, 어두운 경향이 있다. 머리아픈 철학을 제시하고, 복잡한 세계관을 파악하도록 만들며, 애니메이션을 보며 퍼즐 맞추기를 강요한다. 덕분에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진지한 토론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애니메이션을 다 본 이후에도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그에 반하여 '슬레이어즈' 시리즈는 아무 생각없이 아무 부담없이 편안하게 시청하기만 하면 된다. '슬레이어즈' 시리즈에 등장하는 철학, 세계관, 퍼즐은 이해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것이다. 이 애니메이션을 즐기는데 아무런 장애요소가 되지 못한다.

더불어 '슬레이어즈' 시리즈에는 애니메이션의 초기낭만들이 구현되어 있다. 금방 불타오르는 열혈물, 요절복통 명랑물, 웃어도 좋고 안 웃어도 상관없는 개그물, 뻔한 내용을 뻔하게 설명하는 교훈물, 그리고 어처구니 없는 순간 일어나곤 하는 반전물 등등 초기 애니메이션들의 요소들이 '슬레이어즈' 시리즈안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애니메이션들처럼 머리에 쥐나지 않은 채 편안한 마음으로 예전에 즐겼던 초기낭만들을 다시 접할 수 있기에 '슬레이어즈' 시리즈는 독보적인 위치에 선 채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쓸데없이 무게잡는 애니에서는 아멜리아의 실수로 구슬탑이 무너졌을 때 시청자들은 좌절을 느끼지만 '슬레이어즈' 시리즈에서는 '까짓거 다시 쌓으면 되지, 어차피 만화인데!'라며 가벼운 마음이 될 수 있다. 이는 애니메이션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이자 초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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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웅크린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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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레이어즈 Revolution 5화
장르: 판타지/모험
감독: 와타나베 타카시
각본: 타카야마 하루오
러닝타임: 24분



 
'슬레이어즈' 시리즈에서 다크 캐릭터 제로스는 참으로 흥미로운 등장인물이다. 마력, 카리스마, 두뇌회전, 신비주의 등등 모든면에서 주인공 리나 인버스를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제로스는 '건담' 시리즈 최고의 캐릭터 샤아를 닮았다고 볼 수 있다. 주인공을 능가하는 매력를 발산하는 악역으로서 도저히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주인공 캐릭터들에 비하여 턱없이 부족한 비중으로 출연하지만 출연할 때마다 주인공 캐릭터들의 존재감을 압도해 버리며, 매 시리즈마다 스토리의 결정적인 열쇠를 쥔 캐릭터였던 것이다.

어쩌면 제로스는 시청자들을 대신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리즈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음모를 품은 채 나타나 주인공 리나 인버스를 모험 속에 몰아넣고, 리나 인버스와 친구들이 죽어라 고생하는 모습을 뒷짐지켜 지켜보면서 즐기다가, 리나 인버스가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위기에 처하면 선심쓰듯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모습, 그것이야말로 '슬레이어즈' 시리즈를 즐기는 모든 시청자들의 열망을 대변하는 모습인 것이다. 즉, 제로스는 시청자들을 대신하여 '슬레이어즈' 시리즈에 개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제로스는 '선'과 '악' 어느쪽에도 속하지 않는다. 주인공들이 모험속에서 죽을 고생을 하면 할수록 지켜보는 것이 더욱 즐거워지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기에, 제로스는 '악'이면서도 '선'의 행동을 하고, '선'이 필요한 순간 '악'을 내세우는 행동을 서슴치 않고 행한다. 어찌됐든 제로스는 제작진에게 있어서는 써먹기 참으로 편리한 캐릭터이며 시청자들에게 있어서는 대리만족을 시켜주는 고마운 캐릭터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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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웅크린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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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경계
[空の境界: 제3장 통각잔류(痛覚残留)]
장르: 판타지/액션
감독: 오부나이 미츠루
각본: 히라마츠 마사키
러닝타임: 58분

완치됐는데... 아픈 상처라...
통각만이 잔류했단 소리인가?



인간은 누구나...
겁쟁이이다.
예외는 존재치 않는다.

겁쟁이인 것이 들키기 싫어서,
스스로 겁을 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어서,
겁 자체를 외면하기 위해서,
겁쟁이가 아닌척 꾸밀 수는 있어도...

그 어떤 인간도
상처받고, 고통받는 것에
익숙해지지 못한다.
아프고, 힘겨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은...
평생토록 고통에서 도망치려 몸부림친다.
아프고 싶지 않아서
마음을 닫고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보호막을 치며
고통받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를 딱딱한 껍질속에 가둔다.

그리고는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우듯 말한다.
고통없는 삶을 원한다고...




'공의 경계'시리즈의 3번째 작품인
'통각잔류'는 묻고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은 정말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오직...
살아있는 자만이 고통을 느끼며
나와 너 사이에 존재하는 자만이 아픔을 느끼며
관계라는 끈을 가진 자만이 상처를 받을 수 있다.

고통이 없는 삶이란,
스스로 살아있다는 자각이 불가능한
무미건조한 삶일 뿐이다.

너를 통해서 나를 느낄 수밖에 없는
인간이기에...
너를 통해서 내가 상처받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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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웅크린 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