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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주절주절

[웅크린 감자의 리뷰]가 이제 문을 닫습니다.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바람이 분다'를 끝으로 장편 애니메이션계에서 은퇴를 선언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창조적인 시간은 10년 밖에 이어지지 않는데, 나의 10년이 벌써 지났다.' 난생 처음 블로그를 시작하며 '웅크린 감자의 리뷰'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던 것이 지난 2007년 10월 20일이었습니다. 그 날의 방문객은 6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로부터 9년이 흐른 현재 블로그의 총 방문자 수는 1억3백91만명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10년이 안되는 시간동안 진정 과분한 관심을 받아온 것이 사실입니다.



전 역시 미야자키 햐아오 감독처럼 비범한 사람은 되지 못하나 봅니다. 채 10년이 되기도 전에 저의 창조적인 시간이 지나가버린 것 같기 때문입니다. 사실 맨 처음 '웅크린 감자의 리뷰'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영화-TV-애니에 국한되지 않은 채 진정 다양한 리뷰를 해볼 생각이었습니다. 즐겨먹는 과자에서부터 1년에 한두 번 갈까말까하는 여행지까지... 그런데 맨처음 시도한 드라마 리뷰가 대박이 나면서 자연스레 지금의 '웅크린 감자의 리뷰'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지난 9년 동안 TV를 정말 많이도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재미있어서 봤고, 갈수록 신나하며 봤으며, 근자감에 쩔어서 볼 때도 있었고, 어느 시점 이후부터는 의무감에 보다가, 요즘은 아무 생각없이 보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이미 여러번 블로그를 그만두려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매번 일이 터져서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올초에도 '응답하라 1988'이 끝나면 그만둘 계획이었으나,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사전제작 시스템의 대세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태양의 후예'가 시작되면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해서 그만두지 못했습니다.



전 요즘 TV를 보는 게 그다지 즐겁지 못합니다. 여전히 사랑하지만 아무래도 권태기에 빠진 것 같습니다. 잠시 떨어져서 서로(?)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어제(30일) 마지막 '감자 매거진'을 올린 직후 TV를 내다버렸습니다. 물론 요즘은 TV 없이도 방송 콘텐츠를 얼마든지 볼 수 있지만 상징적인 의미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앞으로 최소 3달은 TV를 안 보며 살 생각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영화-애니 등의 리뷰는 가능하지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드라마-예능 등의 리뷰는 불가능해졌습니다. 어쩔 수 없이 '웅크린 감자의 리뷰'를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처음에는 3개월 후에 블로그 운영을 다시 해볼까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달 초에 3일을 쉬고 돌아오니 조회수는 평균 40%가 빠지고 추천수는 평균 50%가 깎였습니다. 그만큼 요즘 블로그 생태계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3개월을 쉬고 돌아와봤자 십중팔구 예전같지 않을 겁니다. 그럴 바에는 그냥 깔끔히 문을 닫기로 했습니다. 최소한 아직 박수쳐주는 사람이 있을 때... 만약 다시 블로그를 하게 된다면 그때는 일러스트 위주의 포스팅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요즘 그림을 배우고 있습니다. 지난 9년 동안 글을 너무 많이 쓰다보니 앞으로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돌이켜 보면 전 '웅크린 감자의 리뷰'로 돈 버는 거 빼고는 거의 다 이룬 셈입니다. 실제로 블로그를 통하여 스타도 대박 프로그램도 유행어도 트렌드도 만들어 봤습니다.(저 혼자만의 생각이니 구체적으로 알려고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 그 과정에서 청탁이나 대가를 받고 글을 써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며, 무려 6700개 넘는 포스팅 중에서 안티질이나 어그로를 목적으로 글을 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9년 동안 여러 극성 팬덤들로부터 수 없이 공격을 받았지만 전 늘 떳떳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웅크린 감자의 리뷰'는 물러갑니다. 평소 이별에도 예의가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해 왔기에, 오늘 이후로 더 이상 업데이트는 없지만 블로그는 최소 한 달동안 유지될 예정입니다. 포스팅이 무려 6700개나 되기에 하나하나 비공개로 돌리는 작업에도 한 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배운 도둑질이라고 너무 리뷰를 하고 싶어서 몸살이 날 것 같으면 은근슬쩍 다시 돌아올 수도 있는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서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웅크린 감자의 리뷰'를 즐겨찾기 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더불어 포털 [다음]과 [티스토리]에도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지난 9년 동안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웅크린 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