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하반기 최대 예능 히트작은 '패밀리가 떴다'이다. 리얼예능이라는 포멧 속에서 시트콤적인 부분을 극대화한 '패떴'은 방송예능의 대세가 리얼예능 ▶ 시트콤으로 옮겨과는 과도기적인 포멧이라고 볼 수 있다. 요즘 방송가에서 가장 죽쑤고 있는 장르가 시트콤인데 무슨 뻘소리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얼마전 '무한도전'과 '황금어장'을 만든 여운혁 CP의 말처럼 이제 리얼예능이 가라앉고 시트콤이 뜰 시기가 되었다. 그리고 시트콤 부활의 조짐은 갈수록 리얼예능적인 요소보다 시트콤적인 요소가 더 많아지고 있는 '패떴'의 인기이다. '패떴'은 엄밀히 따져서 '무한도전'같은 리얼예능이라 볼 수 없다. 리얼예능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 속에서 멤버들의 리얼한 반응들을 통해서 재미와 웃음을 창출하는 것에 반하여 '패떴'은 매번 조금 변형되기는 하지만 비슷비슷한 상황 속에서 멤버들의 캐릭화된 반응들을 통하여 재미와 웃음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무한도전'의 박거성 캐릭터는 박명수 본인을 캐릭터화한 것이지만, '패떴'의 천데렐라는 웃음코드를 창출하기 위해서 '야동순재'나 '꽈당민정'처럼 인위적으로 만든 캐릭터에 가깝다. 이천희와 친한 친구들이 매번 '패떴'에서 보여지는 이천희의 모습이 낯설다고 말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Point -1- 드라마적인 시트콤의 몰락
사실상 '거침없이 하이킥'의 대성공이 대한민국 시트콤 장르의 몰락을 가져왔다. '거침없이 하이킥'은 소위 김병욱 PD류 시트콤의 집대성이자 완성품이라 볼 수 있다. '순풍산부인과(1998)'▶'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2000)'▶'똑바로 살아라(2002)'▶'거침없이 하이킥(2006)'의 계보는 한국형 시트콤의 발전과정이나 다름없다. 한 회에 담겨진 두개의 에피소드, 평범한 일상속에서 만나는 비범한 캐릭터들, 애드립이나 개그코드가 아니라 스토리를 통해서 재미와 웃음 창출 등등 시트콤계의 이병훈 PD라 볼 수 있는 김병욱 PD는 한국형 시트콤을 정립하고 발전시켜 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김병욱 PD류 시트콤의 최종진화형이 시트콤의 드라마화라는 사실이었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후반부의 인기를 주도했던 것은 서민정-최민용-신지의 러브라인이었고 시트콤답지 않을만큼 무겁게 전개된 러브라인은 시청자들로부터 감동과 눈물까지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러자 '거침없이 하이킥'을 본 시청자들은 더이상 시트콤을 봐야할 이유가 없어지고 말았다. 시트콤의 최종 진화형이 드라마화된 시트콤이라면 굳이 시트콤을 볼 필요없이 코믹 드라마를 보면 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거침없이 하이킥' 이후로 방송 3사에서 시트콤들은 죽을 쑤었던 것에 반하여 코믹 드라마들은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지난 여름 작품성으로는 호평을 받았지만 한자릿수 시청률만을 거두다 종영된 '크크섬의 비밀'이 실패했던 이유는 방영시간대의 문제가 아니라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한발 더 나아간 드라마화된 시트콤이라는 정체성의 문제였다. 타이틀만 시트콤이라고 내걸었을뿐 '크크섬의 비밀'은 코믹 드라마라고 보는 것이 옳았다. 일례로 '크크섬의 비밀'에서 높은 인기를 끌었던 '덤앤 더머' 김광규-윤상현은 탁월한 연기력으로 호평을 받았지 시청자들을 쉴 새 없이 배꼽잡게 만들어서 호평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크크섬의 비밀'을 시청자들이 코믹드라마라고 보기에는 스토리의 얼개가 너무 엉성했고 시트콤적인 요소들이 다분했다. 이렇게 되자 시청자들이 '크크섬의 비밀'을 시트콤적으로 볼 수도 코믹드라마적으로 볼 수도 없는 상황이 초래되고 말았다. 시트콤 치고는 너무 드라마적인데, 드라마치고는 너무 시트콤적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정체성의 혼란으로 인하여 '크크섬의 비밀'은 완성도에 비하여 빛을 보지 못한 채 초라하게 종영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Point -2- 리얼예능적인 시트콤의 등장
'크크섬의 비밀'이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초라하게 종영을 맞을 때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시트콤의 미래는 암울하게만 보였다. 그러나 시트콤의 부활방법은 엉뚱하게도 리얼예능에서 제시되었다. 리얼예능 제작에 유달리 취약점을 드러내는 SBS가 리얼예능의 상징이자 본좌라 볼 수 있는 유재석을 데려다가 겉은 리얼예능이지만 속은 시트콤인 '패떴'을 만든 것이다. 워낙 유재석이 리얼예능이라는 포멧에 갖는 상징성과 대표성이 강하여 시청자들이 미처 인지하지 못할뿐 '패떴'의 캐릭터와 웃음코드는 지극히 시트콤적이지 '무한도전'-'1박2일'처럼 리얼예능적이지 않다. 일례로 거성명수, 돌+아이, 허당승기, 은초딩등의 캐릭터들은 리얼예능 안이든 밖이든 변함이 없다. 그에반하여 엉성천희, 달콤살벌 예진아씨, 전직 국민요정, 김계모 등의 캐릭터들은 '패떴'을 벗어나면 어색하기 그지없다. 즉, 노홍철은 어느 프로그램에서든 돌+아이 캐릭터의 모습이지만, 이효리-대성은 오직 '패떴'안에서만 전직 국민요정-더머 캐릭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패떴'을 미국식으로 이름을 붙인다면 '유재석쇼'라는 이름이 어울린다. 빌코스비라는 걸출한 코메디언의 주도하에 연기자들과 호흡을 맞혀 드라마타이즈된 쇼를 보여준 것이 대한민국에서 '코스비 가족만세'라고 알려진 '빌코스비쇼'였고 이것이 바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시트콤인 것이다. '빌코스비쇼'에서 빌코스비의 역할은 '패떴'에서 보여지는 유재석의 역할과 비슷했다. 가족 구성원들과 관계를 형성하여 웃음코드를 만들고, 개인기들을 선보여 코메디적인 웃음을 선사하고, '코스비가족'이라는 나머지 출연진들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나갔던 것이다. 결국 80년대 미국의 시트콤방식을 리얼예능과 접목시킨 것이 바로 '패떴'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 '거침없이 하이킥'이 가장 드라마에 가까웠던 시트콤이라고 하면 '패떴'은 가장 리얼예능에 가까운 시트콤인 것이다. 드라마적으로 꽉짜여진 구조를 허물고 시트콤의 요소들을 리얼예능에 가깝도록 구성하자 시청자들이 열광적으로 호응해주고 있다.
Point -3- '유재석쇼', '강호동쇼', '신동엽쇼'의 가능성
새로운 시트콤의 형태인 '유재석쇼', '강호동쇼', '신동엽쇼'의 포멧이 가진 장점은 리얼예능의 가장 큰 재미요소중에 하나인 라인을 그대로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다. 유재석은 기존에 유라인에 '패떴'에서처럼 어색하지 않게 캐릭터를 연기해줄 연기자 몇명만 포함시킨다면 얼마든지 '패떴'같은 시트콤을 만들 수 있다. 어차피 유라인은 각자 캐릭터를 가지고 있으며 유재석과의 관계형성에서 웃음코드를 만드는데 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강호동도 마찬가지이고 신동엽도 마찬가지이다. 자신과 호흡이 잘맞는 라인을 그대로 시트콤에 가져가고 극의 흐름을 유연하게 해줄 몇몇 연기자들만 추가하면 시트콤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트콤의 부활은 신동엽의 부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강호동-유재석-신동엽 중에서 시트콤에 유달리 애정을 보이며 실제로 시트콤 '남셋여셋'으로 큰 인기를 누려본 신동엽이 다른 이들보다 시트콤이라는 장르를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신동엽도 하루속히 자신의 라인을 만들어야만 한다. '패떴'에서 보여지는 유재석의 활약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새로 변화된 시트콤 환경에서는 팀플레이보다는 리더의 리더쉽이 프로그램의 성공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출연자들도 시청자들도 신동엽을 리더로서 확실히 인지할 수 있도록 신동엽도 자신만의 라인이 필요하다.
지난 12월의 포스팅 '패떴의 시트콤화, 1박2일의 다큐화'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리얼예능이 스스로 존립하지 못한 채 다른 포멧의 요소를 끌어들여야만 한다는 것은 그만큼 리얼예능이 가진 파괴력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1박2일'의 다큐화와 '패떴'의 시트콤화는 리얼예능의 발전이 아니다. 발전이란 다른 포멧의 장점을 끌어들여 리얼예능 자체를 업그레이드 시켜야만 하는데, 현재 '1박2일'과 '패떴'은 다른 포멧의 장점을 끌어들이면 들일수록 다른 포멧화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운혁 CP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예측했듯이 리얼예능은 2009년을 맞이하여 점차 쇠퇴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더이상 그 자체로서 존립할 수 없고 다른 포멧을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포멧에 끌려가는 포멧의 수명은 이제 막바지에 다다른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전 강호동-유재석-신동엽이 함께 출연하는 시트콤이 기획되고 있다는 언론보도는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다. 예능의 본좌들이자 리얼예능의 상징인 강호동-유재석마저도 리얼예능의 쇠퇴를 예감하고 이후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2009년은 리얼예능적인 시트콤들이 리얼예능을 밀어내는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